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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선(禪) 무용가 이선옥

춤을 통해 깨달음으로 가는 길

1997년 2월 예술의 전당 토월 극장에서는 바라밀타 2 - 1997 이라는 공연이 화제를 모았다. 목탁, 바라, 염불 등 사찰 소품들이 등장하고, 무용수가 걸친 종이옷에 붓으로 글씨를 쓰고… 사물놀이패의 현란한 연주와 함께 어우러진 무용수들의 춤사위는 사뭇 이채로웠다. 당시 “뉴욕 선무용단”을 이끌고 왔던 재미 무용가 이선옥 박사. 28년의 오랜 뉴욕 생활을 접고 97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8세 때부터 무용을 시작한 그는 김백초, 이매방, 김소희 선생으로부터 현대 무용, 한국 무용, 가야금 등을 사사했고, 1969년 도미하여 마사 그레이엄, 에릭 호킨로부터 테크닉을 사사했다.1984년 뉴욕대학 무용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동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동양의 선철학을 바탕으로 1972년 선무(禪舞, Zen dancing)를 창안하여 그는 국내보다 미주 유럽 쪽에서 명성을 쌓아 왔다. “반야 심경에 나오는 저 언덕이 피안의 언덕…. 열반에 매력을 느껴 선무를 만들게 됐다. 열반을 예술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된 것이다.”


1971년 미국에서 숭산스님으로부터 선을 사사한 그는 1978년 인천 용화사 송담스님에게서 ‘이뭐꼬(깨달은 자, 즉 불타가 되기 위한 수행 방법인 1,800개의 공안을 원점으로 돌리는 공안.윤회를 끊고 더러워진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위치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작업)를 받아 단전 호흡, 수인법(手引法)을 조화시켜 선무를 완성시켰다. 참선의 원리인 좌선의 원리가 행선의 원리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춤선의 원리로 확장된 것이다.

 

선무는 춤추는 선을 통해 깨달음으로 가는길을 찾는 작업이다. 1986년부터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그의 선무는 1994년 프랑스 르 롱 포엥 원형극장에서 선무가:바라밀타 I 을 발표하면서 8차례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1996년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부원장직을 역임하면서 뉴욕 다니케이 극장에서 아시아 현대 무용제를 감독하기도 하고, 선무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기도 했다. 현재 링컨센터 내 공연 예술 도서관에는 그의 선무에 관련된 비디오 테이프, 논문, 책 등이 모두 소장되어 있다. 

“선무는 ‘순수하다’ ‘동양적이다’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서양인들은 의외로 동양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들에겐 동양의 명상이 첫사랑일 테니까. 그만큼 열렬하다. 그들이 선무를 배우려는 자세는 진지하다. 그들은 열심히 알고자 노력하고, 또 그것을 활용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배워서 자기네 것으로 만들 줄 안다. ”불교에서의 이상적 상태를 표현하고자한 작년 바라밀타 2-1997의 한국 공연이 그에겐 귀국의 계기가 됐다.“뉴욕 생활은 이제 계속되풀이에 불과할 것 같았다”라는 이유. 1969년 도미한 이후 공연순회 강연 등 수많은 활동으로 주목받아 온 그는 28년의 오랜 외국 생활을 뒤로 하고 이제 고국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고향을 떠나야 고향이 보인다.다행히도 한국 무용을 외국에 소개하는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우리 것의 좋은 점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아, 한국이 참 좋구나. 새삼 느끼게 됐다.”


그는 요즘 포천중문의대 보건복지대학원 교수로,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선무 강의를 하고 있다. 배우는 일에 열의를 보였던 외국인들과 달리 강의를 쉽게   빠지고, 과제물을 제때 해오지 않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그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나름대로 강의에 대한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의 성과는 얻어지겠지. 그런데 그 계획대로 학생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으니… 우리 것인데,  더욱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랜 외국 생활에서 돌아와 마주친 한국의 모습은 그에겐 낯선 것이었다. 처음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그는 실력보다 인맥이 우선되는 한국  풍토에 당황했고, 세계를 향해 닫혀진 시야에 또한 당황했다. “흔한 말로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는 모든 것이 국제적인 체계로 돌아간다. 외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합리성, 기술적인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에 적용하는 일이다.”


그는 우리 것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우리의 산이 좋아 평창동 산 밑에 집을 마련했고, 그 집에서 그는 늘 우리 무용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일에 골몰  한다. 문화 예술도 상품인 시대 아닌가. 아름답고,  싸고, 좋고….  우리 무용을 누구나 환영할 만한 상품으로 만들어 세계에 수출하고 싶은 바람이다. 그는 젊은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인터넷등 못 하는게 없는 앞선 모습도, 든든해 보인다. 다만 숙제는 제때 해왔으면 좋겠다  하  하. 우리젊은이들에겐 무엇보다 책임감이 필요한 것 같다. 프로 의식 같은 것이 요구 된다. 마음부터 닫지 말고,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한다.”


그는 내내 한국 사회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습관처럼 이미 무감각해져 있는 부분들이 그에겐 새삼스레 느껴지고 또 답답한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한국 사회의 좋은 점은 없는가? “안 되는 것도 없더라. 밤낮 해 부치는 정신…. 자신감도 있고, 이젠 배고프지 않으니 낭만의 아름다움도 있고.”     

                            
그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한국 무용을 외국어로 번역해 세계에 소개하는 작업을 중요하게 꼽는다. 우리 나라 최고의 대형 서점에서도  외국어로 씌어진 한국 무용에 관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많아야 3~4권 정도. 세계화 시대에 무엇보다 계속되어야 할 중요한 작업이 아닐까. 

 

그에겐 가장 한국적인 무용을 추구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열려진 국제적인 면모가 엿보였다. 자신의 무용 철학을 한국의 전통 속에서 찾아 그것을 국제적인 차원의 예술로 승화시켜 내는 그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게 여겨지는 요즘 아닌가. “그릇은 비어 있을 때, 물을 담을 수 있다. 빈 마음에서 창작의 욕구는 생겨난다. 이런 철학은 다분히 동양적인 참다운 우리의 모습이다.”

The Road to Enlightenment through Zendance

Dr. Sun Ock Lee is the founder of the Zen Dance Company and Zen Dance Therapy since 1974 in New York City. She is one of the Korea's foremost traditional and modern dancers and choreographers. She also is the creator of Zen Dance therapy programs for the general public and post-cancer patients.

 

For her extraordinary dance performances and therapy programs, based on the mastery of Zen philosophy and Zen Dance technique, she has been recognized and awarded internationally at colleges and schools in Asia,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Since 1974 to the present, Zen Dancers or Son Mu Ga has appeared at such places as Alice Tully Hall, Town Hall, Avery Fisher Hall, The Asia Society, La MaMa E.T.C, ASSISI, Joseph Papp Public Theatre, and Le Rond Point, Maison des Culture de Monde, Rennes, Reims in France. She was also being invited to numerous European Dance Festival like the Biennale Dance Festival in France, Florence, and Rome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in Italy. In Asia, she commissioned "Lotus 4: Zen Dance" at the Festival 2000 Years in Hong Kong, performed at various Asia-Pacific Performing Arts Network (APPAN) International conferences in New Delhi, India, and was invited to perform in Thailand for UN Peace Making Conference. 

 

Zen dance is not only an aesthetically beautiful art form, but it is also the foundation for formal meditation practice. Seeing an opportunity for impact in her homeland country, South Korea, Dr.Lee embarked on a teaching career and taught Zen Dance therapy at Pochon CHA University (2002-2007). Besides, she had organized various meditation workshops in Pochon CHA Hospital to help patients with cancer. At the same time, she has founded and been working as an International Secretary General of APPAN since 2000. Presently, she is teaching at Zen Dance temple as an ab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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